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3/20/2009032000815.html
지난달 미국의 명문 MBA 스쿨인 와튼스쿨의 '비즈니스 정책(business policy)' 강의 시간. 지도 교수인 하워드 팩(Howard Pack) 교수는 갑자기 학생들을 향해 "이 중에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말했다. 5명이 손을 들었다.
팩 교수는 그중 박상훈 학생에게 "10년 전 한국 외환위기 때 국민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말해보라"고 시켰다. 박상훈 학생이 "국민들이 금(金) 모으기 운동을 하고 정부 주도의 개혁에도 동참해 고통을 분담했다"고 말하자 팩 교수는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그는 이어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학생들에게 "너희 나라 국민들도 위기 때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았다"는 답변에 팩 교수는 "한국 국민의 응집력이야말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며 "한국의 은행 개혁 모델, 그리고 공적 자금의 신속한 투입과 효율적 관리는 지금 금융 위기에 처한 미국이 배워야 할 가장 좋은 모델 중 하나"라고 정리했다.
같은 학교의 '기업 전략(corporate strategy)'시간에는 70여명의 학생들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략을 놓고 한바탕 토론을 벌였다.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품질의 우수성에 있다.""아니다. 압도적인 생산 규모와 가격 경쟁력이다.
중국 반도체 경쟁 업체가 아무리 가격을 깎아도 삼성을 따라오기 힘들 것이다.
"1학년 800명 전원의 필수 과목(core course)인 이 수업의 주제는 삼성의 반도체 경쟁력이다.이 수업을 주관한 에반 롤리 교수는 "중국 업체들이 저가(低價) 제품으로 반도체 시장을 공략해 올 경우 삼성전자가 계속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들은 5~6명씩 팀을 이뤄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결론은 한가지였다. 중국 업체가 삼성전자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발표한 팀은 12개 팀 중 한 팀도 없었다. 따라서 수업 후반부에는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이 가격인가, 품질인가에 대해서만 학생들이 자리를 나눠 앉아서 서로를 설득했다. 수업 막바지에는 학생들이 삼성의 경쟁력 비결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는데, '품질 경쟁력'이라고 손을 드는 학생들이 전체 인원의 3분의 2에 달했다.
에반 롤리(Rawley) 교수는 "품질 경쟁력이 전략적 우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설명하는 데 삼성전자는 가장 좋은 사례"라며 "교수 네 명이 회의를 거쳐 이번 학기부터 삼성전자 사례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세계 비즈니스 스쿨에 '한국 바람'이 불고 있다. 와튼, 하버드, 컬럼비아, MIT(올해 파이낸셜타임스 비즈니스 스쿨 순위에 따른 순서임)같은 세계적인 비즈니스 스쿨들이 한국 관련 케이스 스터디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다양한 위기 극복 경험이야말로 글로벌 경제 위기 해법에 골몰하는 선진국 MBA 스쿨에 살아 있는 강의 재료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MIT 비즈니스 스쿨의 '개발도상국 발전 과정' 수업의 경우 1, 2회 수업(합쳐서 3시간) 내용이 모두 한국 경제에 할애됐다. 다른 나라(중국과 인도를 합쳐서 1시간 30분, 브라질과 칠레를 합쳐서 1시간 30분)의 4배에 이른다.
MIT 비즈니스 스쿨 학생인 고이티 레니슨(32)씨는 "모국(母國) 아이슬란드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지난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딛고 일어난 한국의 발전상과 극복 비결이 무척 궁금해 한국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MBA들의 한국 배우기는 한국 방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3월 한 달만 해도 와튼, 컬럼비아, MIT 비즈니스 스쿨의 학생들이 잇달아 한국을 방문했거나 방문할 예정이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미국 비즈니스 스쿨에서 아시아 필드트립(수학여행)이라고 하면 당연히 일본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와튼스쿨은 지난 2월 한국 필드트립에 참여할 학생 30명을 모으기 위해 온라인 접수를 받았는데, 1분이 안돼 80명이 등록했다. 방문 비용 중 1000달러를 자비로 부담하는 조건이다.
학생들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수업에서 다뤄졌던 한국 기업들을 찾아 견학한다.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정,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정 등 한국의 첨단 제조 시설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포드자동차 창업주인 헨리 포드의 5대손 헨리 포드 3세(28)도 다음 주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MIT 비즈니스스쿨에 재학 중인 그가 한국 필드트립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Weekly BIZ는 동료 학생을 통해 그가 한국 방문을 신청한 이유를 물었다. 헨리 포드 3세는 "1967년 현대자동차가 생길 무렵부터 한국과 포드는 깊은 인연을 맺어왔지만 최근 한국 기업들의 성공은 경이롭고 놀라울 정도"라며 "꼭 직접 확인하고 현대자동차와의 협력 가능성도 가늠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지난 9일 경기도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본관 회의실. 미국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는 로리 콘웨이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최근 부상하는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추세에 삼성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김수봉 삼성전자 DS부문 기획팀 상무가 몸을 일으켜 설명에 나섰다. 동시에 회의실에 모인 와튼스쿨 학생 30명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됐다. 이날 삼성 임직원들과 와튼스쿨 학생들의 만남은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와튼스쿨 코리안 트립(Korean trip) 일정의 일부로 마련된 것. 올해 코리안 트립은 참가자 폭주로 온라인 접수 개시 후 불과 30초 만에 접수가 끝났다.
지난 10일에는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 학생들이 온라인 게임업체 엔씨소프트를 찾아 질문 공세를 벌였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 산업을 공부해 보려는 목적이다. 이들은 국가브랜드위원회와 롯데그룹도 방문했다. 이 학교 동문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은 이들에게 롯데호텔 무료 숙박을 제공했다.
이 학교 학생 애나 청(28)씨는 "한국은 온라인 분야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드문 사례"라며 "게임과 인터넷 분야의 성공 비결이 궁금했다"고 말했다.
MIT 비즈니스 스쿨의 황야솅(Huang Yasheng) 교수는 방한에 앞서 가진 강의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순간의 주저도 없이 말할 수 있다. 한국은 60년대부터 30여년간 매년 10% 성장해왔다. 한국의 현대차는 1976년 처음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지만, 불과 3년 후에 자체 생산한 차를 수출했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렇게 빠르게 전환하는 경우는 없었다. 정말 굉장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짧은 시간 내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 강의를 듣고 있는 MIT MBA 과정 1학년 박선주씨는 "한국 관련 토론 수업 후엔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물어보는 학생들이 많았다"면서 "최근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는데 이를 먼저 슬기롭게 극복한 모범답안으로 한국을 언급하는 학생들도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세계가 경제 위기에 휩싸인 지금, 미국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와 학생들은 한국의 위기 극복과 성장 비결에서 새로운 '해답'을 찾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최근까지 좌·우 대립, 한국전쟁, 오일쇼크, 외환위기 등 온갖 위기를 넘어서며 고성장을 이뤄낸 한국은 좋은 케이스 스터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 MIT 비즈니스 스쿨의 '거시경제학'(macro economics) 강좌에서는 타브닛 수리(Suri) 교수가 한국이 외환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의견을 물었다. 또 같은 학교의 '세계 경제의 도전'(global economic challenge) 과목의 경우 크리스틴 포브스(Forbes) 교수가 '아시아의 위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갖고 한국이 어떻게 외환위기를 극복했는지 각종 금융지표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미국, 일본 제치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MBA들의 한국 연구에는 한국 특유의 국가 전략 연구와 함께 짧은 시간 내에 초일류 기업으로 부상한 한국 기업들에 대한 연구가 양대 축을 이룬다. 특히 '전략'(strategy)과목에서는 한국 기업들의 케이스가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은 세계적인 온라인 기업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사례로 G마켓과 네이버를 비롯한 한국 인터넷 기업들의 사례를 가르친다. 또 다른 수업에서는 미국 뉴욕 한인 타운의 닭 튀김 가게 '본촌 치킨'을 소개하고, 손님들에게 최대한 신속하게 닭을 튀겨주는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모델'을 소개한다. '본촌치킨'은 이 수업의 중간고사 1번 문제로도 등장했다.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은 1학년 필수 과목인 전략(strategy) 수업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 역시 1학년 필수 과목인 '전략 수립'(strategy formulation) 강의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성공을 분석한다. 중간고사는 삼성전자가 어떻게 경쟁 업체를 계속 따돌릴 수 있는지를 주제로 삼아 치를 예정이다.
와튼스쿨의 크리스토퍼 반덴벌트(Van den Bulte) 교수의 마케팅 수업은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를 주요 사례로 다룬다. 한국 고객들은 브랜드 없이 제품만 고르면 17.7%의 고객이 삼성 휴대전화를 고르지만, 애니콜 브랜드를 알려주면 52.5%의 고객이 고른다는 것. 반덴벌트 교수는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가장 적절한 사례"라고 말했다. 또한 와튼스쿨의 '생산 관리' 수업은 LG전자 패널 생산의 효율성이 높은 까닭에 대해 분석했다.
와국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높아져비즈니스 스쿨들이 한국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학생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다.
MIT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2006년부터 한국 방문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올해 25명 모집 정원에 52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2대 1이 넘었다. 방문 프로그램 설명회에는 100여명이 몰렸다.
MIT 비즈니스 스쿨 한국 방문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양영은(31) 학생은 "까다로운 선정 절차에도 한국이 4년째 매년 MIT 공식 방문지로 빠지지 않고 선정되는 것은 그만큼 한국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방문 프로그램에 지원한 MIT 비즈니스 스쿨의 알렉산더 스티븐슨 학생은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웠고, 단군과 원효대사의 정신에 대해 배웠다"며 "한국의 과거 역사뿐 아니라 현재 성공한 기업까지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방문 프로그램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에 비해 금융위기 타격이 덜한 한국 기업에 취업을 원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와튼스쿨에서 공부하는 앤드류 메이위씨는 "첨단 기술을 잇달아 개발해내는 한국 기업에 관심이 많다"며 "삼성의 전략이나 제품 개발 파트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
Saturday, March 21, 2009
Subscribe to:
Post Comments (Atom)
No comments:
Post a Comment